서울한양도성 스탬프투어(18.62Km)
일자 : 2018년 5월 13일(일) 10:50~18:41
참가 : 왼발, 오른발
날씨 : 옅은 안개와 오후 미세먼지가 더해져 시야는 좋지 않음, 간간히 빗방울도 떨어짐, 그러나 대체적으로 걷기에 무난
10:50 숭례문(남대문) 출발
11:30 돈의문터(서대문,강북삼성병원) & 경교장
11:56 인왕산 입구-편의점에서 음료와 먹거리 구입
12:42 인왕산(339.9M) 정상
13:12 창의문(북소문)-출입증 교환(※ 신분증 필수)
13:46 백악산(북악산, 342.5M) 정상
14:18 숙정문(북대문)
14:25 말바위안내소-출입증 반납
15:00 점심-우리밀국시
15:30 혜화문(동소문)
15:55 낙산(124.4M)정상
16:11 흥인지문(동대문)-스탬프 4개 완주필 확인 후 뱃지 수령(숭례문 근무자들 퇴근시간 때문에 흥인지문에서 확인)
16:57 광희문
17:40 남산입구
18:10 목멱산(남산, 270.9M)
18:41 숭례문(남대문) 도착
토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종일 쇼파와 한몸이 되어 있으려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옆지기에게 내일 새벽이면 비가 그친다고 하니, 서울한양도성길 나들이나 다녀오자고 말을 해둔다.
새벽 5시30분경 창밖을 보니 짙은 안개로 시계가 전혀 없다.
거실로 나와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쇼파와 한몸이 되어 잠이 든다.
아침 08:30 눈을 떠보니 어느정도 안개는 걷혀 남산까지는 보인다.
서울러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선다.
옆지기는 날씨도 깨끗하지 않은데 굳이 나가야겠냐고 한다.
나는 그저 배낭을 꺼내 놓는다. 할수 없이 같이 따라 나선다.
숭례문버스정류장에 하차하여 숭례문을 기점으로 서대문(돈의문) 방향으로 시작을 한다.
10:50분 상쾌한 맘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고고~
직장 근처이기 하지만 처음 걸어보는 골목길을 걸어보는 재미는 솔솔하다.
사직터널 위쪽 인왕산들머리 초입까지는 도로와 공원 주택가를 걷는다.
인왕산부터 본격적으로 성곽길 돌계단이 시작된다. 전날 비가 내린덕분인지 주변의 나무는 정말 싱그럽기 그지 없다.
어느덧 아카시아꽃은 만발을 했는데, 향기가 없다. 아쉽다.
인왕산 범바위에서는 조망은 언제나 봐도 최고다.
좀더 쾌청한 날씨였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인왕산을 지나 창의문에서 신분확인 후, 목걸이 표찰을 교부 받는다. 이곳 탐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의 신분증이 필수적이다.
교부받은 표찰은 숙정문 이후 말바위탐방안내소에 반납하면 된다.
백악산 정상까지의 돌계단은 사람들에게 익숙치 않은 코스이다.
백악산 이후 숙정문, 혜화문, 낙산, 흥인지문, 광희문까지는 대체적으로 무난하다.
마지막 남산 국립극장 시작접으로 남소문터 나무데크 계단은 마지막으로 힘을 한번 더 써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체력안배를 하여야 할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카메라 밧데리 예비용을 챙기지 않았는데, 신라호텔 즈음부터 밧데리가 방전 신호를 보내온다.
급격히 사진 촬영횟수를 줄여본다.
남산 정상이후부터는 핸드폰을 이용하여 사진을 남긴다.
18:41 출발점이던 숭례문(남대문)에 도착하여 서울한양도성길 탑방을 종료한다.
종료이후, 남대문시장 갈치조림골목에 들어 시원한 맥주 한잔과 함께 하루를 정리한다.
다음 날씨가 쾌청한날 멋진조망을 보러 다시 한번 돌아봐도 좋겠다.
▼ 범바위에서 서울시내가 바라다 보이는 파노라마 전경
▼ 10:50
숭례문 → 돈의문터 출발
▼ 호암아트홀
▼ 점심식사때 자주 다니던 식당
▼ 평안교회
▼ 배재공원
▼ 덕수궁돌담길
▼ 정동교회(개선공사중)
▼ 덕수궁 중명전
중명전은 경복궁의 집옥재와 같은 황실도서관으로 계획되어 1899년경에 완성된 건물입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황제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며,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아픔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중명전은 처음에는 서양식의 1층 건물로 만들어졌고, 1901년 화재 이후 정면과 양측면의 3면에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재건되었습니다. 그리고 1925년 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외벽만 남기고 소실되자 건물의 형태를 변형하여 재건했으며, 광복 이후 민간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은 민간소유권이었던 중명전을 2006년에 인수하고, 2009년에 변형된 건물의 형태를 되찾는 공사를 실시하여 대한제국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복원된 중명전에는 전시관을 마련하여 대한제국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http://www.deoksugung.go.kr/cms/show.asp?c_show_no=34&c_check_no=30&c_relation=156&c_relation2=117
[초기의 중명전 / 1899년 3월]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소장
▼ 오징어볶음이 일품인 곳이다.
▼ 일찍 오픈을 한 곳이라 들어가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
▼ 보구여관 터
▼ 신아일보기념관
▼ 이화여자고등학교
▼ 수령 520년 회화나무
▼ 응급의료센터 경비실 앞에 스탬프함이 보인다.
▼ 경교장
1938년에 지어진 양옥주택으로 안정된 비례와 아치창을 이용한 단아한 외관이 특징이다. 1930년대 성숙된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이 건물은 광복 후 김구(1876~1949) 선생이 한동안 사용하기도 하였다. 김구 선생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 남북이 하나된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힘썼다. 경교장은 1949년 김구 선생의 저격사건이 벌여진 현장이기도 하다. 내부에 부분적인 변형이 있지만 건물의 모습이나 기본적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경교장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 서울특별시교육청
▼ 인왕산 정상 2.15Km
▼ 인왕산입구 들머리
이곳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 인왕산(338M)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조선 개국 초기에 서산(西山)이라고 하다가 세종 때부터 인왕산이라 불렀다. 인왕이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이름인데,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이름을 개칭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다. 일제강점기에 인왕산의 표기를 인왕산(仁旺山)이라 하였으나, 1995년 본래 지명인 인왕산(仁王山)으로 환원되었다.
자연환경
인왕산의 높이는 338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암반이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의 능선을 따라 지나며 동쪽 산허리에 북악산길과 연결되는 인왕산길이 지난다.
인왕산에는 타포니(Tafoni)가 발달한 토르(Tor)가 많다. 주로 서울시 무악동 남쪽기슭 135m 고도에 위치한다. 인왕산의 토르는 주빙하 기후에 의해 화학적 풍화가 진행되어 생성된 것과 후빙기에 절리 발달에 따른 차별침식으로 생성된 것이 있다고 한다. 흔히 타포니는 토르와 관련되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화강암 토르에서 관찰되는데 인왕산 또한 그에 해당한다. 토르에서 타포니가 발달한 부분은 다른 부위보다 풍화가 더욱 진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7년과 2008년 인왕산에서 관찰된 식물은 전체 75과 232종 38변종 5품종으로 총 275종이며, 귀화종은 37종이다. 주요 출현 식물은 생태계 교란 야생동·식물인 국화과의 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이다.
형성 및 변천
곳곳에 약수터가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서울시민들의 유원지였으나 군사상의 이유로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인왕산은 조선시대의 명산으로 숭앙되었으며, 조선 초기에 도성을 세울 때 북악(北岳)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과 인왕산을 좌우 용호(龍虎)로 삼아 궁궐을 조성하였다.
인왕산 [仁王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주말드라마 '데릴남편 오작두' 극중 여주인공 한승주가 사고 있는 집
▼ 백악산(북악산)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위치. 북악산은 서울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다.
위치 | 서울 경복궁(景福宮) 북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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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342m |
고려 숙종 때 북악산 아래는 남쪽의 수도인 남경(南京)의 궁궐이 있었던 자리였으며 당시에는 북악산을 면악이라 기록하여 전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북악산을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백악산신(白岳山神)을 모시는 사당이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된 이름이다. 이후 도성(都城)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에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북악산(北岳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산을 남산(南山)이라고 불렀다. 북악산의 높이는 342m이며 남쪽으로 완만한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모양은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형상으로 주변의 산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되었으며 그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세우고 도읍으로 정하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산정부에는 백악산신을 모시는 신사가 만들어졌다. 1394년(태조 4년)에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景武臺)도 이곳에 위치했다. 현재도 대통령의 집무실인 청와대(靑瓦臺)가 북악산 아래 위치하고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으로, 인왕산(仁王山)·낙산(駱山)·남산(南山) 등과 더불어 서울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이들 산지 능선을 연결한 옛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산 능선에는 옛 성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쪽 산기슭과 인왕산과의 사이의 안부에는 서울 4소문의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일명 紫霞門)이 남아 있으며 부암동 뒤쪽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계곡이 있다. 북악산은 예전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경승지를 이루어 조선시대 선비들이 계곡을 찾아 탁족회(濯足會)를 자주 열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후 소나무가 벌채로 사라지고 현재는 참나무류가 많다. 북악산 산정을 내려와 남쪽 기슭에 청와대가 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공원이 있다.
북악산 [北岳山] (두산백과)
▼ DDP광장에서 한양도성 순성길 길찾기 주의구간
이곳 횡단보도에서 한양도성 순성길은 전방 10~11시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무심코 큰길 따라 직진할 경우 광희문 찾기에 어려움을 걲을 수 있다.
▼ 서울성곽 중간점
▼ 성곽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이 바닥에 남아 있다.
▼ 핸드폰 카메라 촬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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